Customer & Claim Story
신영로파마는 ‘작은 고추가 맵다’라는 속담에 딱 들어맞는 기업이다. 국내 굴지의 제약유통업체를 제치고, 단 스무 명의 직원이 120억 원의 매출을 올리며 알레르기 약품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를 넘어 베트남 시장의 문까지 두드리고 있는 신영로파마 이주봉 대표에게 성공 비결을 물었다.
신영로파마를 소개하려면 이탈리아의 알레르기 의약품 전문 제약 회사 ‘로파마(Lofama s.P.a Italia)’를 빼놓을 수 없다. 로파마는 1945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창업한 뒤로 지금까지 전 세계 알레르기 시장에서 신제품 개발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세계 최초로 혀 밑에 녹여 먹는 면역 백신을 개발한 것도 바로 이 회사다. 부작용이 없고 사용이 간편해 출시와 동시에 알레르기 환자들에게 한 줄기 빛이 되었다. 신영로파마는 로파마 사의 약품을 국내에 단독으로 수입, 유통하고 있다.
“회사 이름은 딸과 아들의 이름에서 한 자씩 따와서 ‘신영’으로 지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정직하고 성실하게 사업을 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거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회사 이름을 짓게 된 연유를 밝히는 이주봉 대표의 목소리는 단단했다. 이 대표가 로파마 사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08년의 일이다. 유럽 알레르기 학회에 다녀온 지인이 건넨 카탈로그를 보고는 ‘유레카’를 외쳤다.
23년 동안 제약 회사에서 근무하며 내공을 쌓아온 ‘제약 맨’인 그의 눈에 알레르기 면역 백신 타블렛 타입 설화제(Sublingual)는 혁신,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알레르기 약은 증상을 줄여주는 항히스타민제를 말합니다. 당시 국내의 알레르기 제약 시장에는 주사제와 액상 두 종류밖에 없었어요. 반면 우리 제품은 태블릿 형태로 혀 밑에 물고 있으면 되었어요. 복용이 훨씬 간편하고, 아이들이 사용해도 될 만큼 안정적이죠.”
사업성을 알아본 그는 당장 이탈리아 본사에 메일을 보냈다. 그 뒤 본사의 러브콜을 받고 이탈리아로 날아간 그는 그 자리에서 계약서에 도장을 찍자고 했다. ‘미스터 리’의 불도저 같은 추진력에 놀란 본사 회장이 만류할 정도였다고. 하지만 확신이 있었기에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2009년 복잡한 수입 허가를 마무리 짓고, 2010년 본격적으로 제품을 국내에 유통할 수 있었다. 덕분에 국내 알레르기 환자는 조금이라도 빨리 제품의 편리함을 누릴 수 있게 됐다.
매출 120억 원과 전 세계 1위 매출 지사 달성
한국 알레르기 환자를 위해 뛰어든 사업이었지만 현실적인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유럽에서는 오래전부터 유통되던 약이었지만, 한국 식약처의 문턱은 높았다. 수입 허가를 받기까지도 힘들었는데, 막상 판매를 시작하니 신생 회사를 알아주는 곳이 없었다. 경쟁사는 직원만 600명이 근무하는 대기업이었지만, 신영로파마는 영업 사원 10명이 전국을 커버하고 있는 ‘작은 구멍가게’였던 것. 누가 봐도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다.
여기서 포기할 이 대표가 아니었다. 확신이 든 이상 그만의 뚝심으로 3년을 버텼다. 5년 만에 지출과 수입이 같아지는 지점을 지나, 성장률 그래프는 급격히 우상향했다. 한 해 기본 30%씩 매출이 늘었고, 70%란 성장률 그래프를 받아 든 해도 있었다. 그렇게 창업 14년 만인 2022년, 매출 120억 원을 달성했다. 지난해가 더 특별했던 이유는 또 있다. 신영로파마가 전 세계 13개 지사 중 독일을 제치고 매출 1위에 올라섰다.
“직원들에게 늘 이야기하는 것은 ‘정직’이에요. 영업할 때도 거짓 없이 정직하게 하라고 말하죠. 회사 또한 정직하게 운영하니 그걸 알아봐 주신것 같습니다. 이런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창립 때부터 지금껏 함께 달려온 직원들 덕분입니다.”
새로운 도전을 함께하는 가족 같은 사람들
이 대표는 최근 국내를 넘어, 아시아 시장 진출이란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매년 본사 담당자를 직접 만나 현안을 토론하고, 유럽 알레르기 학회에 참가하며 시장 흐름을 파악하는 모습을 보고, 본사에서 아시아지부장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해왔기 때문이다.
그는 몽골에 진출했던 경험을 발판 삼아 베트남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국에서 MBA를 마친 아들이 베트남 진출을 도맡아 진행 중입니다. 아직 나가보지는 못했지만, 들려오는 소식이 다 좋아요. 저에게 힘이 되는 또 다른 파트너는 메트라이프생명이에요.”
이 대표가 메트라이프생명과 인연을 맺은지도 벌써 11년째다. 그가 담당 재무설계사를 신뢰하게 된 데는 계기가 있다. 일정 금액의 보험 설계를 부탁했는데, 예상보다 높은 금액대의 보험 설계를 제안받았다고. 담당 재무설계사는 당시의 재무 상황과 이 대표 건강상의 이력을 따져 종신보험과 연금보험을 따로 설계해 내놓으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이 대표는 자신이 놓치고 있는 부분까지도 세심하게 살펴주는 데 감동해 그 자리에서 계약했다. 이익을 좇는 여느 보험사와 달리 고객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는 모습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주봉 대표는 평소 애송하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을 소개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은 과감히 접고, 자신의 선택에 대해선 최선을 다해 책임지는 이대표가 가는 길은 언제나 탄탄대로다.